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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력기르기] 인문4

greenlotus 2022. 3. 11. 16:34

해당 글은 필자가 혼자서 공부하기 위한 글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해당 글을 통해 어떠한 금전행위는 하지 않고 오로지 기록용임을 알기 바란다. 이 문제지에 관한 저작권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있습니다.

[16~2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18세기 북학파들은 청에 다녀온 경험을 연행록으로 기록하여 청의 문물제도를 수용하자는 북학론을 구체화하였다. 

-> 북학파의 배경지식이 있어서 바로 와 닿았다. 청의 문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학자들의 파 였다. 그리고 그 학문은 북학론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그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구나.
이들은 개인적인 학문 성향과 관심에 따라 주목한 영역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이들의 북학론도 차이를 보였다.

-> 같은 북학론도 차이가 있었다는 이야기 이니깐, 왜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떄문이라고 말하네. 공감이되네. 일상생활에서도 같은 상황에 대해서 나의 의견과 친구의 의견이 다를떄도 많았으니깐.
이들에게는 동아시아에서 문명의 척도로 여겨진 중화 관념이 청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 각각 다르게 반영된 것이다.

-> 이들은 북학파들이겠네. 중화 관념이 매우 중요한가 보네. 근데 중화 관념이 머지? 중국 사상 인건가 ? 문명 척도로 여겨짐은 매우 중요하고 변하지 않는 기준 같은 거네. 근데 이 관념이 청의 인식에 다르게 반영이 됐다라 함은 그에 따라 의견도 달랐겠네. 전문장의 의견달라진 이유가 큰 것중에 중화 관념의 반영에 대한 거네.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된걸까 ?
1778년 함께 연행길에 올라 동일한 일정을 소화했던 박제가와 이덕무의 연행록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확인된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대표 사람들을 소개하네 북학파 박제가, 이덕무, 위의 문장들 처럼 같은 것을 바라보는 상황을 연출했네. 그런데 의견이 달랐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거 같은데 어떻게 달랐을 까 ?
------------------------[A]------------------------
북학이라는 목적의식이 강했던 박제가가 인식한 청의 현실은 단순한 현실이 아니라 조선이 지향할 가치 기준이었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와 이덕무의 차이가 머야?  박제가의 의견이 나오네. 아 조선이 따라야할 기준이었구나. 따라야 할 만큼 먼가 배울게 많았던 걸까 ?
그가쓴 󰡔북학의󰡕에 묘사된 청의 현실은 특정 관점에 따라 선택 및 추상화된 것이었으며, 그런 청의 현실은 그에게 중화가 손상 없이 ⓐ보존된 것이자 조선의 발전 방향이기도 하였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와 이덕무의 차이가 머야?   특정 관점에 따라 선택 및 추상화된 것 이게 무슨 말일까 ? 특정에 따라 바뀌니 주관적이다라고 생각해도 되려나 ? 그리고 박제가는 중화관념을 보존했네. 의문이 겹치니 정리해야지 청인식에서 박제가는 중화관념을 보존했네.
중화 관념의 절대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당시 조선은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기보다 중화와 합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북학론의 밑바탕이 되었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특정 관점에 따라 선택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 아 아까 중화관념이 동아시아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는데, 이게 절대성이라고 표현되었네. 즉 기준인거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여겨서 기준이고 따라야한다고 한거구나. 박제가는 이런 생각을 가졌었군.
명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는 당시 주류의 견해에 대해 그는 의리 문제는 청이 천하를 차지한 지 백여 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소멸된 것으로 여기고, 청 문물제도의 수용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논하며 북학론의 당위성을 설파하였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특정 관점에 따라 선택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 명의 의리는 상관없는 게 과거 국가 이므로 이미 중화관념은 청의 것이라는 거고 그리고 청 문물이 이익이 많다는 것을 말했구나. 그러면 청이 좋구나 하고 당위성이라는 게 생기니깐.

대체로 이익 추구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주자학자들과 달리, 이익 추구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긍정하고 양반도 이익을 추구하자는 등 실용적인 입장을 보였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중화관념이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특정 관점에 따라 선택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    주자학자와 달리 이익을 추구는 당연하다고 말하네.
---------------------------------------------------
이덕무는 입연기 를 저술하면서 청의 현실을 객관적 태도로 기록하고자 하였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특정 관점에 따라 선택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    아 이덕무는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구나. 박제가는 특정관점에 따라 선택이 되었고 아까 생각처럼 개인에 따라 나뉘뉘 주관적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네. 
잘 정비된 마을의 모습을 기술하며 그는 황제의 행차에 대비하여 이루어진 일련의 조치가 민생과 무관하다고 지적하였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아 잘 정비된 마을이 있긴한데 그거는 민생 국민들을 위한게 아니라 황제 행차 때문에 정비한거다라는 거구나. 즉 객관적으로 보고 안좋은 부분은 지적했다는 이야기 같네.
하지만 청 문물의 효용을 ⓑ도외시하지 않고 박제가와 마찬가지로 물질적 삶을 중시하는 이용후생에 관심을 보였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그렇지 지적을 해도 청 문물의 효용은 받아들이고 실용적이고 이익적인거에 긍정적인 관심을 두었구나.
스스로 평등견 이라 불렀던 인식 태도를 바탕으로 그는 당시 청에 대한 찬반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청과 조선의 현실적 차이뿐만 아니라 양쪽 모두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아 그렇구나. 무조건 박제가 처럼 따르는 게 아니라 차이 인정하고 양쪽 가치를 다 인정했다는 거군. 조선과 청 별개로...
이런 시각에서 그는 청과 조선은 구분되지만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전문장을 요약하며 추상적으로 표현했네. 그렇다 구분은 되는데 서로 배척하지는 않고 인정하는 거지.
즉 청을 배우는 것과 조선 사람이 조선 풍토에 맞게 살아가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그렇지 다시 구체적으로 어떤지 말해주네. 청배우는 거랑 조선사람이 사는거랑은 별개인것 처럼 청 문물 받아들이고 배우는거는 상관없다는 거네.
하지만 그는 중국인들의 외양이 만주족처럼 변화된 것을 보고 비통한 감정을 토로하며 중화의 중심이라 여겼던 명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는 등 자신이 제시한 인식 태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 의문 중화관념이 머지? 청 인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이 되었지? 박제가(중화관념 - 보존 / 이덕무?)  아 이덕무도 중화 중심이 중요했다고 여긴거 같고 그게 대표적으로 명이여서 그에 대한 의리에 대해 생각했네. 박제가랑 다르게 보존은 아니고 중화관념이 흩어지고 무너졌다라고 생각했네. 근데 청의 문물 인정하자라는 주장과 중화 중심을 과거 명으로 생각 한 것이 약간은 모순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구나. 왜냐하면 중화관념 중화 중심을 뜻하는 현재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으나 한편으로는 과거 명이 중화관념으로 여기는 부분도 있었다는 거지... 여튼 중화 관념이란 거는 상세히 안나오지만 중국이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중요한 관념, 기준 같은 것을 의미하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네 한번 찾아 봐야겠다.

(나)
18세기 후반의 중국은 명대 이래의 경제 발전이 정점에 달해 있었다. 

-> 명이후에 최대 발전한 나라를 이야기 하려고 하나 보네. 배경지식이 있다면 명이후 청에 대한 이야기임을 짐작했겠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향촌의 정기 시장부터 인구 100만의 대도시의 시장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시장들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국내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 청의 배경을 이야기 하네. 시장 발달로 교역이 활발 했다는 거네. 여러 단계의 시장을 이미지로 상상해준다.
장거리 교역의 상품이 사치품에 ⓒ 한정되지 않고 일상적 물건으로까지 확대되었다. 

-> 교역에 있어서 범위가 넓었다는 것을 말하는 구나. 교역하는 물건들을 상상해본다.
상인 조직의 발전과 신용 기관의 확대는 교역의 질과 양이 급변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상인 조직 발달은 교역을 활발하게 함을 알겠으나, 신용기관의 확대는 어떤 의미일까 ? 신용기관은 일상생활에서 신용을 통해 거래하는 거는 은행이나 금융 기관이다 이로 인해 금융적으로 시장과 교역에 있어서 보완을 해줬다는 이야기일까 이로 인해 질과 양이 급변해서 좋아졌다는 이야기일까 ? 왜냐하면 신용 기관이 있으면 현금으로만 살 수 있는 물건을 한달 연체나 다른 물건의 담보나 다양해지고 확대해진다는 거 같네...

대외 무역의 발전과 은의 유입은 중국의 경제적 번영에 영향을 미친 외부적 요인이었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대외 무역은 외부적 요인임을 알겠지만 왜 은의 유입은 외부적 요인일까 ? 여러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거 때문인가 ? 
은의 유입, 그리고 이를 통해 가능해진 은을 매개로 한 과세는 상품 경제의 발전을 ⓓ자극하였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은을 매개로 한 과세? 라는 거는 과세를 매길때 은을 한다는 거구나. 즉 일상생활 생각해보면 만원이 과세되면 그것을 은으로 받는 다는거네.  근데 왜 과세가 상품경제를 발전 시키지 ?
은과 상품의 세계적순환으로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그렇지. 이거는 전문장 처럼 과세를 은으로 매개해서 받으니깐 세계 교역이 많을 수록 은과 상품은 순환이 되겠지. 
그러나 청의 번영은 지속되지 않았고, 19세기에 접어들 무렵부터는 심각한 내외의 위기에 직면해 급속한 하락의 시대를 겪게된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이런 번영도 잠시 심각한 내외 위기가 있었다고 하네. 내부는 머고 외부는 멀까 ?
북학파들이 연행을 했던 18세기 후반에도 이미 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전문장에서 이어지는 거네. 위기 징후가 있었군 어떤걸까 ?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여러 문제는 새로운 작물 재배, 개간, 이주, 농경 집약화 등 민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았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내부 위기는 머지? 아 급격한 인구문제가 있었네 이거는 내부적인 문제겠네.
인구 증가로 이주 및 도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사회적 유대가 약화되거나 단절된 사람들이 상호 부조 관계를 맺는 결사 조직이 ⓔ 성행하였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마찬가지 인구 증가로 문제가 이어지네. 서로서로 핍박 받은 사람들끼리 도우려하니 뭉치게 되네. 이미지로 상상해보자. 그리고 집단이 커지니 정부에 맞서는 반란을 일으킬수도 있겠다.
이런 결사 조직은 불법적인 활동으로 연결되곤 했고 위기 상황에서는 반란의 조직적 기반이 되었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그렇구나. 전문장에 생각대로 다시 정리해서 알려주네.
인맥에 기초한 관료 사회의 부정부패가 심화된 것 역시 인구 증가와 무관하지 않았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인구문제로 관료 부패도 심화되었구나 왜지 ?
교육받은 지식인들이 늘어났지만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관료 조직의 규모는 정체되어 있었고, 경쟁의 심화가 종종 불법적인 행위로 연결되었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인구문제로 관료 부패도 심화되었구나 왜지 ? 아 상상해보자 공무원 은 수는 한정되었는데 지원자가 많다보니 서로 뇌물을 먹여서 되게끔 해달라고 하는 풍조가 있었겟네. 그러니 비리가 판을 쳤겠구나.
이와 같이 18세기 후반 청의 화려한 번영의 그늘에는 ㉠심각한 위기의 씨앗들이 뿌려지고 있었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아 이런 위기들이 있었고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도시에 인구증가 였네.
통치자들도 번영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그치 이런 상황에는 그러겠다.
조정에는 외국과의 접촉으로부터 백성들을 차단하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서양선교사들의 선교 활동 확대로 인해 이런 경향이 강화되기도 하였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아 이렇게 선동당해서 말안들을 수 있으니 외부의 교류와 선교활동에 있어서 제재를 했겠네. 차단하고 서로 교류를 못하도록 이해 했다 이게 외부 위기라도 보아야 하나? 어쨋든 내부를 다스리기 위해 외부의 교류를 막은 거면 외부 위기라고하기는 애매하네 그중간쯤으로 두고 생각해두자.
이 때문에 18세기 후반에 청 조정은 서양에 대한 무역 개방을 축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결국 이런 문제로 무역개방도 축소하니 경제도 안좋아 졌겠네...외부의 위기로 봉착되는 구나 전문장에서 약간 의심했는데 결국 내부 문제로 외부 위기가 도래하여 전체적으로 위기가 형성 되었다는 배경을 알려주었군.
그러나 그때까지는 위기가 본격화되지는 않았고,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사회 변화의 부정적 측면을 염려하거나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 신용기관 확대는 어떤 의미인가? 은의 유입은 왜 외부적 요인인가? 왜 과세가 상품 경제의 발전 시키지? 외부 위기는 머지? 그렇구나. 소수 지식인만 염려부분을 알았다는 거네. 근데 다읽었지만 의문이 다 가시지는 않았다. 신용기관의 확대 의미가 내생각이 맞았는지 확인해보고 은의 유입은 과세 매기면서 외부 나라에서 가져오게 되니 외부적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외부교역에서 가져오는 거니깐... 근데 왜 과세가 상품 경제 발전을 시킬까 ? 과세의 정의와 효용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16. (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는 18세기 중국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제시하면서 그러한 견해의 형성 배경 및 견해 간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 맞다.
② (가)는 18세기 중국을 바라보는 사상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각 관점이 지닌 역사적 의의와 한계를 서로 비교하고 있다.

-> 역사적 의의는 말하지 않았고 이덕무에 대해서는 모순점을 지적했다.
③ (나)는 18세기 중국의 사회상을 제시하면서 다양한 사회상을 시대별 기준에 따라 분류하여 서술하고 있다.

-> 아니다 틀렸다.
④ (나)는 18세기 중국의 사상적 변화를 제시하면서 그러한 변화가 지니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분석하고 있다.

-> 사상적 변화 없엇고 번영에 따른 부정적 위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⑤ (가)와 (나)는 모두 18세기 중국의 현실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현실이 다른 나라에 미친 영향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 아니다. 다는 안했다.
1번

17. (가)의 ‘박제가’와 ‘이덕무’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박제가는 청의 문물을 도입하는 것이 중화를 이루는 방도라고 간주하였다.

-> 맞다 청의 문물 도입하고 동아시아의 기준인 중화관념을 이룰수있다고 간주했다.
② 박제가는 자신이 파악한 청의 현실을 조선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였다.

-> 맞다 중화관념이라고 여겨지는 청은 조선이 따라야할 기준이고 즉, 조선자체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도 될 수있다.
③ 이덕무는 청의 현실을 관찰하면서 이면에 있는 민생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다.

-> 맞다.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반면 박제가는 주관적이었다.
④ 이덕무는 청 문물의 효용성을 긍정하면서 청이 중화를 보존하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 틀렸다. 마지막에 중화관념이 무너졌다는 생각을 가졌다 왜냐하면 과거 명의 전통이 사라진 것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이 나왔다.
⑤ 박제가와 이덕무는 모두 중화 관념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 맞다. 중화 관념은 동아시아에서 문명의 척도로 여길만큼 좋게 보고 그에 따라 북한론이 생긴거다.
4번

18. 평등견 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조선의 풍토를 기준으로 삼아 청의 제도를 개선하자는 인식 태도이다.

-> 아니다 어느것 하나 기준이 아니라 각자대로 둬야 한다고 했다.
② 조선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청의 방식에 따라 개혁해야 한다는 인식 태도이다.

-> 아니다. 개혁이 아니라 조선 청 따로따로 놔두고 배울건 배워야 한다고 했다.
③ 청과 조선의 가치를 평등하게 인정하고 풍토로 인한 차이를 해소하려는 인식 태도이다.

-> 평등하게 인정하는 건 맞지만, 차이 해소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④ 중국인의 외양이 변화된 모습을 명에 대한 의리 문제와 관련 지어 파악하려는 인식 태도이다.

-> 모순으로 이덕무가 한 생각이며 이게 평등견은 아니다.
⑤ 청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지양하고 청과 구분되는 조선의 독자성을 유지하자는 인식 태도이다.
5번 -> 평등견은 조선 , 청 각자 인정하고 독자성 유지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는 5번이다. 

19. 문맥을 고려할 때 ㉠의 의미를 파악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새로운 작물의 보급 증가가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군.

-> 인구증가가 원인이다 해당 내용이 없다. 그리고 번영이 아니라 위기이다.
② 신용 기관이 확대되고 교역의 질과 양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군.

-> 인구증가가 원인이다 해당 내용이 없다. 그리고 신용 기관 확대로 인한 급변 내용이 아니라 위기이다.
③ 반란의 위험성 증가 등 인구 증가로 인한 문제점들이 나타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군.

-> 인구증가가 원인에 대한 내용이 있다. 맞다.
④ 이주나 농경 집약화 등 조정에서 추진한 정책들이 실패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군.

-> 인구증가가 원인에 대한 내용이 아니고 씨앗아 아니라 위기의 결과다.
⑤ 사회적 유대의 약화로 인하여 관료 사회의 부정부패가 심화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군.

-> 인구증가로 인한 원인이다. 틀렸다. 사회적 유대의 약화로 인한 거는 인구증가로 소외계층이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약간 거리가 있다. 패거리가 생기는 원인에 해당할 수는 있겠으나 내용과는 안맞다.
3번


20. <보기>는 (가)에 제시된 󰡔북학의󰡕의 일부이다. [A]와 (나)를 
참고하여 <보기>에 대해 비판적 읽기를 수행한 학생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 기>
우리나라에서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많이 나는 산물을 다른 데서 산출되는 필요한 물건과 교환하여 풍족하게 살려는 백성이 많으나 힘이 미치지 못한다.

-> 물품을 교환했군 상상해본다.
… 중국 사람은 가난하면 장사를 한다. 

-> 상상해본다 중국은 장사를 하네.
그렇더라도 정말 사람만 현명하면 원래 가진 풍류와 명망은 그대로다. 

-> 그렇구나 우리가 현명해야함을 지적해야하네.
그래서 유생이 거리낌 없이 서점을 출입하고, 재상조차도 직접 융복사 앞 시장에 가서 골동품을 산다. 

-> 그렇구나 장사와 물건 교환에 익숙하다는 거네 중국은 아주 실용적인 거네.
… 우리나라는 해마다 은 수만 냥을 연경에 실어 보내 약재와 비단을 사 오는 반면, 우리나라 물건을 팔아 저들의 은으로 바꿔 오는 일은 없다. 

-> 은의 가치를 강조하려나보네. 우리는 은이 없어지고 중국은 은이 많아지고.
은이란 천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물건이지만, 약은 사람에게 먹여 반나절이면 사라져 버리고 비단은 시신을 감싸서 묻으면 반년 만에 썩어 없어진다.

-> 그렇지 변하지 않는 은의 중요성을 짚어주고 중국 청의 문물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거네.

① <보기>에 제시된 중국인들의 상업에 대한 인식은 [A]에서 제시한 실용적인 입장에 부합하는 것이라 볼 수 있어.

-> 맞다. 중국 청의 실용적인 부분 옹호함
② <보기>에 제시된 조선의 산물 유통에 대한 서술은 [A]에서 제시한 북학론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라 볼 수 있어.

-> 맞다. 조선은 실상이 별로이고 중국 청의 문물과 시스템 옹호로 인해 근거라 할 수 있다.
③ <보기>에 제시된 중국인들의 상행위에 대한 서술은 (나)에 제시된 중국 국내 교역의 양상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

-> 상충되지 않는다는 잘 맞다는 것이고, 상행위의 활발함을 나타냈기에 나의 소개한 것과 같다. 위기는 있었지만 교역 양상은 맞다.
④ <보기>에 제시된 은에 대한 평가는 (나)에 제시된 중국의 경제적 번영에 기여한 요소를 참고할 때, 은의 효용적 측면을 간과한 평가라 볼 수 있어.

-> 아니다. 은의 효용적을 말했고 간과 한건 아니다.
⑤ <보기>에 제시된 중국의 관료에 대한 묘사는 (나)에 제시된 관료 사회의 모습을 참고할 때, 지배층의 전체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 진술이라 볼 수 있어.

-> 그렇지 보기는 관료에 대해 좋은 점만 이야기 했고, 실제로는 위기 부정부패가 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네.
4번

21. 문맥상 ⓐ~ⓔ와 바꿔 쓰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① ⓐ : 드러난
② ⓑ : 생각하지
③ ⓒ : 그치지
④ ⓓ : 따라갔다
⑤ ⓔ : 일어났다
3번 실제 문장에 대입하니 딱 답이 나온다.

이 문제지에 관한 저작권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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